위기는 언제나 갑자기 자연 재해 처럼

정밀아 - 서시
밤, 이 밤은 물러날지니 아침, 새 아침이 밝아오리라.
어제, 어제를 살아낸 나는 지금, 다름 아닌 지금 이곳에. '

* * *

4월 15일 목요일.
심리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 날. 새로 산 맥코트를 자랑할 생각으로 몸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심리 상담을 마친 후 머리를 염색할 생각으로 머리도 감지 않은 채.
그리곤 저녁에 희재와 같이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집을 나와 버스를 갈아타려고 정류장 앞에 멀뚱멀뚱 서 있던 오전 11시 7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 00아 지금 어디니. 심리 상담 미룰 수 있니? 
지금 바로 울산대학병원으로 가야 해. 빨리 가야 해. 지금 당장. 
나도 잘 모르겠어. 아빠가 다쳤다고 연락이 왔어. '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짧게는 심리 상담 당일 취소 수수료가 걱정되었고 조금 정신을 차리니 수수료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희재에게 전화해 저녁 약속을 취소했고 지도 앱을 펼쳐서 대중교통으로 울산대병원을 갈 수 있는 최단 시간을 찾았지만 빨라도 3시간이 족히 넘었다. 어쨌든 울산 방향의 지하철에 몸을 실었고 일단 무턱대고 네이버에 울산 교통사고를 검색했다.
울산 교통 특보, 도로 속보 등 교통사고와 관련된 모든 검색어를 입력해 관련된 사이트에서 울산에 어떤 사고가 났는지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런 기사나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다음 아버지에게 전화했지만 수화음이 멈추질 않았다.

연산역을 지날 즈음 최근 정년 퇴임하신 큰고모가 머리에 스쳤다. 다행히 시간이 나셔서 큰고모를 온천장역에서 만나 자가용을 타고 울산대병원으로 향했다. 제발 크게 다치치만 않으셨길. 제발 머리만 다치지 않으셨기를 고모와 함께 기도하며.

울산대학병원 신관 주차장에 차를 밀어 넣고 뛰쳐나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지금 본관 1층이거든? 지금 아빠 짐이 좀 많아서 그런데 어디니?'

일단 차를 타고 온 나보다 일찍 도착하셨다는 것에 놀랐다. 휴대폰을 넘어 전해지는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마음이 더 조급해져서 본관까지 냅다 뛰었다. 그곳엔 아버지의 동료이신 최 아저씨와 두 손 가득 아버지의 짐을 든 어머니가 계셨다. 나는 짐을 건네 들었고 어머니는 손을 벌벌 떨고 계셨고 최 아저씨는 어머니와 고모 그리고 나를 모아 상황 설명을 해주셨다.

아버지는 일을 하다 4M 높이에서 추락하셨고 오른쪽 어깨뼈 골절과 머리 쪽에 실금과 약간의 피멍울이 있어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최 아저씨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것저것 조언도 해주셨고 화물차에 남은 아버지의 짐과 가방을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참 감사했다.

문제는 본관에는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한 명 이외에 들여보내 주지 않아서 나와 큰고모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어머니가 들어가셔도 중환자실의 환자는 직접 만날 수 없으며 간호사를 중간 다리 삼아 전화로 말을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지랄맞았다. 그래도 다행인 지점은 아버지가 중환자실 들어가기 직전에 어머니가 잠깐 아버지의 모습을 봤고 의사소통도 되고 오른쪽 팔을 제외하면 움직임이 자유로웠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날씨가 쌀쌀했다. 언제까지 밖에만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고 어머니는 오후 내내 병원 본관을 쏘다니시다 돌아오셨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세 가지 정도였다. 첫째 오후 6시 이후 아버지의 머리 상태를 알려주는 주치의의 전화를 받을 것. 아버지가 안경을 잃어버려서 화물차에 예비 안경을 찾으러 가는 것. 사고 담당 울산 형사님에게 사고 현장 CCTV 보존을 요구하는 것. 

급한 허기를 빵으로 달래고 일단 고모의 자가용을 타고 아버지의 화물차로 향했다. 30분 거리를 돌고 돌아 1시간 만에 찾아갔다. 화물차의 보조석과 운전석은 일반 차량과 다르게 사람 키 만한 높이에 있어서 발판을 밟고 올라갔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휴대폰의 후레시를 켰다. 가득 어질러져 있는 먼지가 자욱한 차 안에서 내가 생신 선물로 드린 차량용 무선충전기도 찾았고 사고 당시 쓰인 것만 같은 피가 조금 묻은 수건도 발견했지만, 예비 안경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중환자실에 전화해 간호사를 통해 안경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울산으로 향했다. 울산 경찰서에서 사고 당시 CCTV도 봤고 울산대 병원에서 전원을 위한 병원끼리 연계를 안 해줘서 실랑이도 벌였다. 전원을 위한 퇴원 수속 도중 산재 보험으로 병원비 400만 원을 결제하려다 아버지가 강제로 서명한 특고노동자 산재 제외 신청서가 발목을 잡아서 급하게 의료 보험으로 결제하는 지랄맞은 일도 있었다. 사설 응급차의 위용 위용 사이렌 소리에 홍해의 기적 마냥 차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는 일에 감동을 하기도 했다. 부산대학교 병원에서도 입원과 수술을 둘러싼 다툼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입원할 수 있었다.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었다. 풀어 쓰기에는 한없이 길어질 것만 같은 사건들이 고비마다 있었다. 그 고비마다 격한 위화감이나 울화, 환멸 따위의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어머니의 손과 발 그리고 힘이 되어드리는 게 최선이었다.

이후 며칠 동안 병간호는 우리 가족이 돌아가면서 맡았고 수술도 생각 보다 잘되었다. 그래! 그래도 죽으란 법 없다고 높은 고비들을 연거푸 넘다 보니 조그만 언덕 따위 별것 아니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사람과 상황이 있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힘이 되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사건 이후 10일 가까운 시간이 흐를 동안 우리 가족 모두 참 바빴다. 상담 기록을 적고 싶은데 나중에 차차 정리해야겠다. 아버지의 재활이 무탈하기를, 머리에는 아무 이상이 없기를 기도할 뿐이다.


덧글

  • abc 2021/04/27 14:16 # 삭제 답글

    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 식이 2021/04/27 22:38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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