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브로콜리너마저 (Broccoli, you too?) -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A) Good Person)

19년도 5월, 자취방에 앉아서 브로콜리너마저의 3집 공개를 기다렸다. 
너무 오랜만에 나오는 정규 앨범이라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과연 2집보다 더 좋을까? 만약 별로면 어떡하지?
그런 마음으로 3집 첫 트랙인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무슨 꼴값인가 싶겠지만 진짜 그랬다. 3주 가까이 유독 이 곡에 매달려 내 마음을 털어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너무 좋은 가사가 그 당시 내 마음과 맞아떨어져서?


* * *


상담 내용을 기록하려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한참을 앉아 있다. 딱히 일기를 적고 싶지 않고, 글쓰기에 겁도 났다. 왜 그럴까?

첫째, 이미 가족과 친구, 희재에게 이야기를 툭툭 터놓았다. 감정 되새김질을 끝마쳤다. 
지난주 상담이 12회차였다. 7회차에 가족에게 고백한 일을 상담한 이후에 우리 가족은 대화가 많아졌다. 8회차에 아버지의 사고 사건을 이야기할 즈음엔 가족이 힘을 뭉칠 수밖에 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가족은 더 돈독해졌다. 9회차에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 이야기가, 10회차는 스스로 느끼는 내 모습이 주제였다. 11회차는 내 MBTI 경향과 희재와 나누는 대화를, 12회차는 최근 읽은 책에서 느낀 점과 희재에게 미안했던 일을 주제로 삼았다.

둘째, 최근 읽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책 때문이다. 2주 전 연수 센터에 온 강사님이 자소서를 쓸 때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 주셨다. 물론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일기를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책은 글을 쓸 때 주의하면 좋은 점과 저자가 겪은 일을 번갈아 배치해 놓은 글쓰기 지침서에 가까웠다. 나는 첫 단원 '적의를 보이는 것들'을 읽으면서 피식피식했다. 절뚝이는 문장의 군살들을 다이어트하듯 ~적, ~의, ~것, ~들을 빼는 방법을 알려주는 챕터였다. 잘못된 문장의 예제를 읽으니 내 일기장이 생각났다. 문득 내 문장에는 저 군살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져 ctrl + F 로 검색해 봤더니 하얀 홈페이지에 노랑 은하수가 펼쳐졌다. 푸하하.
문제는 책 초반을 넘어 중간으로 가면서 생겼다. 피식거림은 이내 사라지고 심각해졌다. 모든 단원의 지적에 내 일기장이 오버랩된다. 겁이 났다. 더 이상 나는 글을 못 쓸 것만 같았다. 또 회피적 성격이 고개를 드나 싶었다. 그때였다. 이런 나를 예상이라도 한 듯이 글쓴이가 말했다.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문장은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함 속에서 문장의 결이랄까요 무늬랄까요, 아무튼 선생님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갖고 있는 그 이상함이 선생님의 문장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는 셈이죠."

 "어쩌면 선생님이 말한 그 치욕이야말로 합의를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기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치욕을 느끼면서 합의를 다시 생각하고 다시 치욕을 느끼고…….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무수한 비문과 오문을 쓰는 실험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다른 시간과 공간, 그러니까 다른 거리감과 감수성을 찾는달까요. 그것도 최대한 즐겁게 말이죠."

모든 사람이 이상하듯 모든 문장은 이상하다는 말과 무수한 글을 쓰면서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위로가 됐다. 그저 글을 잘 쓰는 법을 서술한 스킬북이 아니라 내 어깨를 토닥이듯 격려하는 심리 서적 같아 놀랐다. 물론 교수님 두 분이 주고받는 메일 내용이 딱딱하고 점점 어려워져서 두 세 번 눈을 비비며 다시 읽기도 했지만 말이다.


* * *


요즘 내 머릿속에 맴도는 비슷한 맥락의 말들이 있다.
상담 초기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 "사람은 인간다움을 고집하면 동물다워지고 동물다움을 인정할수록 인간다워집니다."
유튜버 아빠의사님 영상에서 나온 말. "정신과 심리학의 결론은 '모든 사람은 찌질하다'라는 거예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쿨한 척 하느라 우스꽝스럽게 되는  거죠. 주변에 보면 스스로 쿨한 척하면서 주변에도 되게 쿨하기를 강요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어요. 바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때는 찌질하게 군다는 점이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책에서도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되고 싶은 모습을 된 것 마냥 단정 짓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진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이 노래를 듣는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덧글

  • 가나 2021/06/03 18:03 # 삭제 답글

    갈수록 글을 잘 쓰시는것 같아요
  • 식이 2021/06/06 14:18 #

    아앗 책 내용을 의식해서 글을 써봤어요.ㅎㅎ 감사합니다.
  • 2021/06/05 04:24 # 답글

    가사가 참 좋네요
  • 식이 2021/06/06 14:21 #

    그쵸! 이 노래를 듣고는 "역시! 브로콜리너마저! ㅠㅠ" 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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