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연수와 자가격리

 어떻게든 뭐라도 - 브로콜리 너마저

브로콜리 너마저 새로운 EP 앨범이 나왔다. 기타리스트인 향기 님이 나가고 난 후 첫 앨범이다.
향기 님의 존재감이 큰 곡들을 좋아하는 나로서 셋이서 만든 이번 앨범은 과연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뭐 물론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특히 타이틀 두 곡에서 음악적으로 향기 님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한 노력이 느껴졌고 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요즘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는데 시원한 라임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시듯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 * *


자가격리 이틀째, 내 방 책상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서 일기를 쓰고 있다. 
전 주 금요일 희재랑 방문한 음식점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
어제 기업 연수 도중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문자가 왔고 일단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하지만 확진자와 단 세 걸음 정도 되는 거리에서 밥을 먹은 터라 다음 주 금요일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연수 센터, 연수받는 회사, 일하는 현장, 심리상담센터 그리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돌리며 나름대로 대처를 잘했다.

문제는 연수받는 회사에 실습생을 관리하는 부장과의 전화였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어디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얕은 한숨과 함께 뱉은 말.
아니!!! 2주간 회사, 집, 독서실, 독서실 근처 편의점만 다니다가 금요일, 일을 마친 후 잠시 만나 저녁을 먹고 헤어진 게 전부인데 라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물론 그 사람은 자기가 그런 말을 한 것조차 기억 못 하겠지만 왜 난 그런 작은 한마디에 생채기가 크게 날까.
그 한마디가 하루를 집어삼키듯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뿐만 아니라 기업 연수 첫날과 둘째 날에도 그랬다.
더 궁금한 질문이 없냐는 물음에 퇴근 통근 버스는 어떻게 되냐고 물었는데
'아... 저번에 다 말해 줬던 건데 또 물어보네?'라며 귀찮게 왜 같은 말을 하게 하냐는 뉘앙스.
'아, 내가 질문을 잘 못 했나? 실수했나?' 생각했다.
그저 퇴근 버스가 몇 대가 오고 몇 호를 타면 되는지 궁금했는데 저번에 들었던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고 다시 한번 더 물어볼 수는 없었다.
결국 첫날 눈앞에서 5호 차 버스를 보내고 십 분이 더 지나서야 퇴근 버스가 다섯 대 중에서 한대만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20분이면 도착할 곳을 마을버스를 타고 돌고 돌아 한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의 많은 사람은 자가용을 타기 때문에 통근버스에 그닥 관심이 없었고 그 전날 5호 차 한 대가 배정된 것도 오후 4시가 넘어서 사내 메일로 발송된 것을 확인했다. 사실상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알 턱이 없었다.

이 사건 외에도 실망과 좌절의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상담 선생님께 찾아가서 모든 일을 토해내듯 말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냐며 안타까워하셨고 처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을 겪고 상담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
아기가 스스로 첫걸음을 뗀 일을 다 큰 어른이 돼서 기억을 못 하듯 누구나 처음을 겪는데 자기가 처음이었던 과거는 까맣게 잊는다고 하셨다.
처음 간 장소에서 모든 게 처음이니 당연히 잘하고 싶어도 절대 잘할 수 없고 실수 또한 당연하다고 하셨다.
왜 작은 일에 다른 사람들보다 데미지를 크게 입는지, 이렇게 마음이 물러터져서 어디다 써먹겠어요 하며 한숨을 쉬니
선생님이 피식 웃으시며
 "ㅎ 식이 씨가 선천적으로 마음이 섬세해서 그래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조금 깊게 느끼는 거겠죠?" 하셨다.


상담을 받은 다음 날 퇴근길에서 우연히 유튜브 '멘디쌤의 심리학 이야기' 채널의 커뮤니티 탭 글이 관련 영상 피드에 올라왔다.

1. 실망과 좌절이라는 감정은 이번 성과가 희망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정보를 전할 뿐, 내가 더 이상 가치 없는 인간이라든가 인생 전체가 망했으니 자기비하나 하고 앞으로 자신감 따위 가질 생각도 하지 말라는 신호가 아니다.
2. 실망은 우리로 하여금 내게 있어 이 목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닫게 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예컨대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나머지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닌지(목표 수정), 노력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전략 수정) 잘못된 부분을 찾아 고치도록 동기부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
3. 따라서 실망에서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고 실망이라는 감정에만 계속해서 갇혀있다 보면 이러한 괴로운 마음을 달래는데 과한 에너지를 쏟게 되며 이는 그야말로 본말전도다.
4. ‘적당한’ 실망은 필요하지만 ‘선을 넘은 과한 실망’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되려 가뜩이나 부족한 인지적 자원을 까먹는 등 해롭다는 것이다.
출처 : [박진영의 사회심리학]좌절과 실망이 습관인 사람에게
😀 멘디쌤 이야기 우리는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때, 딱 그만큼의 데미지를 입어야 합니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그 몬스터가 물리공격을 한 그 수치만큼만 타격을 입어야 하지, 스스로 그 공격을 독데미지로 변환해서 타격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부정적인 일이 몇개 일어나더라도 딱 그만큼만 아파하시고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로 해요!


ps. 맞춤법을 검사하다 딱 한 글자를 지우는 소심한 복수에 기분이 조금 좋아진게 너무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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