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할 이야기

Lil Nas X - MONTERO (Call Me By Your Name)


99년생 흑인 래퍼 릴 나스 엑스.
커밍아웃 이후 사람들이 지옥에나 가라고 해서
뮤비에 보란 듯이 폴댄스를 추며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의 모습은... 대체...
이렇게 멋있고 유쾌할 수가.


* * *


자가격리 때문에 심리상담도 미뤘다.
아! 상담 얘기를 하기 전에 희재와 나는 다행히 최종 음성이었고 9일간의 자가격리는 잘 끝났다.
자가격리는 생각보다 힘들었고 공무원들도 참 바쁘겠단 생각이 들었으며 생각보다 개인에게 많은 것을 맡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일 드디어 상담하러 가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다.
하나하나 정리해보려고 또 일기장을 찾았다.


1. 최근 책 한 권을 읽었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 대 모임"
그냥 인스타를 지나치다 누군가의 책상 위에 있던 책을 두 엄지로 드래그해서 이름을 알았다.
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외설적이고 절망적이었다. 자살을 견디며 우울과 외로움에 비명을 지르는 듯 쓴 일기가, 절규가 내 눈을 질끈 감게 했다.  내 감정에도 데미지가 들어온다고 느껴서 이쯤에서 그만 읽을까 생각했지만, 그가 극복했으니 책을 내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와 내가 필자의 이야기를 읽는 행위가 그에게 또 다른 형태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멈출 수 없었다.


2.자가격리를 하면서 음악을 많이 찾아들었다.
카더가든의 1집과 2집, 릴 나스 엑스의 팝, 악뮤의 콜라보앨범까지.
어쩌다 듣게 된 카더가든의 2집 타이틀 곡 '꿈을 꿨어요'가 너무 좋았다.
소울이나 R&B 장르를 할 줄 알았는데 밴드 사운드였다. 의외였다.
카더가든의 음악적 결이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의 색채가 궁금해서 1집과 2집을 찬찬히 들었다. 전부 선명히 락이었다.
1집은 많은 아티스트와 협업해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2집은 내가 좋아하는 여러 명도의 회색빛이었다. 여러 주관적인 감정의 이야기를 모노톤으로 나열한 느낌. 가사가 조금 어렵기도 했다.


3. 6개월간의 연수가 곧 끝난다. 누군가는 유학을 갔고 누구는 취업했고 나는 남은 사람들과 현장 연수를 한다.
연수가 끝나면 나는 뭐를 하지?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모기처럼 또 불안함이 자리 잡았다.
연수를 지원할 때엔 과연 이 연수가 괜찮을까 걱정됐고 현장 연수를 시작할 땐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했고 막상 연수가 끝나려니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하지 막연하다. 아니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으나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다.
웃긴 사실은 무언갈 해내지 못하면 내 탓이요, 그것을 해내도 마음속에는 '그거 남들 다 하는 건데 그 정도는 해야지, 뭐가 대단해?'라며 해낸 기쁨을 만끽하기보단 꺼린다는 것이다.


4. 자가격리 중에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과 주방 사이를 가로지르다 저녁밥을 먹으며 혼자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를 봤다. 들키고 싶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아 아는 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조금 일찍 온 아버지에게 여쭤봤다. 아버지가 예상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화장실 욕조에 실리콘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언제 어떻게 매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하지 말라던 실리콘 칠을 냅다 했다. 남은 뒤치다꺼리를 전부 엄마가 하고 화장실 상태는 마음에 안 들고 뭔가 잘해보려고 한 걸 혼내기에도 뭣해 속상함에 우셨을 거라 했다.
그 주말, 아버지와 어머니는 실리콘과 마스킹테이프를 사 와서 셀프 시공을 했는데 완벽하진 않더라도 꽤 준수했다.
생각보다 너무 잘됐지 않냐며 인터넷에 검색하고 여러 셀프 시공 글을 읽었다며 환하게 웃는 어머니가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5. 희재는 자가격리 때문에 근무표가 약간 꼬였다. 6일 연속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쉬는 날 월요일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며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안 보면 다음 주 금요일에 데이트해야 하는걸!' 칭얼댔지만 희재는 단호했다.
알고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으로 충전이 필요한 아이인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했다.
서운함을 너무하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금 망설이던 때 희재는 '내일 그럼 일찍 빠빠이 할 거야.' 했다.
일찍 헤어지는 게 무슨 대수랴. 암요암요 아무렴요. 아침 일찍 부터 희재가 사는 동네에서 만나기로 했다.
뭔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기분에 고마웠다.
희재에게 여름은 쥐약이니까. 희재가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계절인 걸 상기시켰다. 신경 써야겠다.


6. 기업 연수를 막 시작할 때, 처음에는 입이 헐더니 현장직 실습이라 일은 힘들고 불면증 마냥 잠이 안 와서 이틀 잠을 좀 늦게 잤더니 어랍쇼? 편도가 부었다.
이비인후과를 가보니 약하게 열도 난다더라. 담당자는 아프면 무리하지 말고 진단서 끊어오면 하루 이틀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것마저 해내지 못하면 무언가 실패한 사람이 될 것 같아 스스로 실망할 게 뻔했다.
잘하고 싶은데 잘할 수 없으니 마음이 힘들고 몸도 아프고 일도 힘들지만 그래도 버텼다.
작업을 하다 공백이 생기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지금 여기에 서 있나?' 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 생각은 어느 한 시점, 한 순간을 조명한다. 그때부터야! 라고 그때를 곱씹는다. 주책맞게 왜 일하다 눈물이 흐르고 그럴까.
며칠 뒤 아빠의사님 유튜브에 '미움을 다루는 법' 영상이 올라왔다. 5개의 단계 중 나는 두 번째인 충분히 애도하며 슬퍼하는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링크를 달아두었다. 누군가가 밉다면, 과거의 어떤 한 시점이 떠올라 나를 슬프게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덧글

  • rumic71 2021/08/07 23:24 # 답글

    컨디션 속히 좋아지시길...
  • 식이 2021/08/08 22:16 #

    지금은 아주 건강해요~ 감사합니닿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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