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세번째 이야기

이소라 - track 6


#.11월 5일 금요일
희재네 집으로 갔다.
희재네 반려견인 코코가 나를 알아보고 어김없이 달려들었다.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드는 코코를 보고 있으면 꼭 희재를 닮았다.
평소에도 종종 희재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 같은 희재.

코코를 산책시키고 난 뒤 잠시 이야기하자고 희재를 내 앞에 앉혔다.
그동안 여태껏 내가 배려해오던 점, 말하지 않고 삼키고 넘어갔던 말, 서운했던 마음들을 토해내듯 말했다.
이 문제를 차갑게 해결하려 하면 헤어질 것만 같아서 내 모든 진심을 다해 뜨겁게 해결하겠다고, 앞으로 너를 아프게 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제일 좆같은 점은 앞으로 네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사랑이 아닌 미안함과 죄책감을 바탕으로 할 것이라 말했고
이 뜨겁고 슬픈 마음이 다하고 더는 눈물이 흐르지 않을 그때 너와 헤어질 것이라고도 했고 
오늘같이 알 수 없는 타이밍에 너한테 지랄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일 H형을 찾아가 다 털어놓겠다고, 다음 주 상담 선생님을 만나 조언을 듣겠다고 했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감정을 한 톨 남김없이 희재에게 쏟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 몸부림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희재에게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했다.
희재는 의자에 걸친 내 새끼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그저 울먹이는 내 두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 쏟아내고 나니 웃기게도 기분이 나아졌다.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어서 배가 고파왔다.
두끼에 가서 떡볶이나 먹자고 하며 짐을 챙겼다.
나가기 전 희재가 다가와 나를 꽉 끌어안고 오열하듯 말했다.
정말 미안한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고, 형은 최선을 다하고 있단걸 알고 있다고, 나는 형이 없으면 안 된다고.
나도 희재를 끌어안고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며 말했다.
나는 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너 또한 그래야 한다고, 네 마음 안에 너로 가득 찬 상태로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그 빈자리는 절대 나로 채울 수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도 없다고.
눈치없는 코코는 서로 껴안고 펑펑 우는 우리에게 달려와 자기도 끼워달라며 앞발을 들이밀었다.

두끼에 도착해서 떡볶이를 먹으며 오은영 선생님의 금쪽 상담소 방송을 주제삼아 희재에게 물었다.

"오은영 선생님은 항상 어린 시절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부모님께 어떤 말을 듣고 싶었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잘하고 있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아.
너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부모님께 어떤 말을 제일 듣고 싶었을 것 같아?"

희재는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또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 그럼 나중에 생각나면 네가 편한 방식으로 나한테 알려줘"라고 했다.

그날 밤 희재는 문득 카톡으로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나는 중학교 때 엄마 아빠한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못하면 못한다고 뭐라 그러고 잘하면 당연한 거고.
중학교 때 성적이 많이 올라서 이야기했었는데 성적이 오른 게 정상적인 거라고 당연하다 했었어.
그래서 방에 들어가 울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나는 너무 미웠겠다며 희재를 위로했다. 이렇게 고민하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내가 대신 괜찮다는 말을 해 줄 테니 너 또한 네 마음 안에 있는 중학생 희재에게 괜찮다는 말을, 잘했다는 말을 건네보라고 말했다.






덧글

  • 2021/11/17 23: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21/11/18 17:5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21/11/21 08:3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식이 2021/11/25 20:17 #

    당연히라는 단어가 사전적으로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게 라는 뜻이더군요.
    일의 앞 사정은 마땅히 그러합니다. 뒤의 사정까지 마땅히 그러했다면 저 또한 당연히 헤어졌을거예요.ㅎㅎ
    미래에 절대 후회하지 않을 지금 제 판단을 믿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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